알베르 샤미소는 모범적인 보험사 직원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아내와 신혼을 보내고 있어야 할 시기에 그는 악몽에 사로잡혀 업무와 생활, 감정 상태, 아내와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시련을 맞는다. 의사가 처방해준 특효약으로 악몽은 멈추지만 또 다른 난관이 찾아온다. 그의 그림자가 총천연색으로 변해 버린 것.
변해 버린 그림자는 그에게 재앙인가, 축복인가?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 최고의 인기작
건축과 도시 계획,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권력 갈등 등을 주로 파고드는 ‘어둠의 도시들’에서 『한 남자의 그림자』는 개인의 존재론과 예술가의 정체성 등 조금 다른 방향에서 어둠의 세계를 바라본 이야기다. 물론 명확한 원인이 드러나지 않은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지고 명백한 결론 없이 어떤 징후를 간직한 채 끝난다는 점, 그리고 가상의 도시인 ‘블로스펠트슈타트’가 현실 세계와 많은 부분에서 겹쳐 보인다는 것은 다른 책들과 다를 바 없다.
『한 남자의 그림자』는 ‘어둠의 도시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다. ‘어둠의 도시들’의 다른 책들은 다소 무겁고 어렵거나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지만, 『한 남자의 그림자』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이 갑자기 변모한다는, 보편성 있고 공감하기 쉬운 주제를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 속에서는 기괴한 변신으로 그려지지만 그림자에 색깔이 입혀지면서 분명 독특한 아름다움이 발산되고, 그것이 결국 연극이라는 예술로 승화되는 해피엔딩은 독자들에게는 밝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비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충분히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슬쩍 연결해주는 연결 고리를 찾으면 읽는다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알베르와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인물들은 ‘기울어진 아이’에 등장하거나(바펜도르프 박사) 언급되었던(미셸 아르당) 인물들이며, 미나가 알베르와 함께 연습하는 연극은 바로 ‘어둠의 도시들’ 중 한 권인 『탑』이다.
카프카의 『변신』, 어둠의 세계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
『한 남자의 그림자』는 이미 20세기의 신화로 자리 잡은 카프카의 『변신』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변신』에서 보험 외판원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벌레로 변해 버린 후 경제적인 기능을 상실하자 가족에게 경멸당하며 짐스러운 존재로 전락한다. 『한 남자의 그림자』에서 보험 회사 직원 알베르 샤미소 역시 그림자가 컬러로 변한 후 회사 동료와 가족에게 기피 대상이 되고 그들에게 소외당한다.
그러나 부조리한 현실에서 벌레가 되는 것 외에는 출구를 찾지 못한 그레고르 잠자가 절대적인 소외 상태에서 결국 파국을 맞았다면, 알베르는 자신을 기피 대상으로 만든 ‘색깔 있는 그림자’ 덕분에 이익만을 좇는 비열한 계산의 세계에서 예술의 세계로 옮겨 간다. 무대 위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고 새로운 사랑도 얻는 이 새로운 ‘변신’ 이야기는 현대인들이 꿈꿀 만한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동화다.
컬러가 인쇄 상에서는 망점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흑백으로 변한 알베르의 그림자가 점점 확대되면서, 선으로 채워진 만화의 검은 면이 되는 마지막 장면은 작가들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을 다시 한 번 돋보이게 하는 결말이다.
배우 조재현의 추천사
평범한 한 남자가 생각지도 못하게 연극 배우로 새 삶을 찾는다는 것, ‘배우’가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면을 가진 존재라는 점 등 『한 남자의 그림자』는 실제로 배우들에게 매우 큰 공감을 불러올 만한 이야기다. 배우이자 연극 기획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조재현이 『한 남자의 그림자』를 다음과 같은 글로 추천했다.
배우가 이렇게 찬란한 그림자를 가진 존재라니! 모든 배우들은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색깔 있는 그림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배우를 비롯한 예술가의 남다른 운명, 그리고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겨진 꿈과 잠재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아름답고, 무대 위로 옮겨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