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허지웅이 세상 모든 알코올 의존자들에게 추천하는 한 편의 만화
부제: 실종일기 ②
원제 アル中病棟
워서 부제: 失踪日記 2
그림 아즈마 히데오 | 글 아즈마 히데오 | 옮김 오주원
출판사: 세미콜론
발행일: 2015년 6월 15일
ISBN: 978-89-8371-706-1
패키지: 반양장 · 신국 변형판 145x210 · 340쪽
가격: 18,000원
내 삶의 밑바닥이 과연 어느 즈음인지 시험하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을 쳤다고 생각할 때 그보다 언제나 더욱더 깊은 심연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게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다. 아무튼 망가져 봤자 나만 손해라는 후회와, 그러나 비로소 망가져 보니 나만 손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깨달음 사이에서 우리는 그토록 멍청이처럼 방황한다. 세상의 모든 멍청이들을 위한 한숨 같고 웃음 같은 이야기. 나는 지금도 취해서 이 쪽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허지웅(영화 평론가)
『실종일기 ② 알코올 병동』(이후 『알코올 병동』)은 2011년 한국에 정식 출간되어 ‘지극히 비범한 만화’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은 『실종일기』 작가 아즈마 히데오의 신작 장편 만화이다. 전작에서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알코올 중독 시절의 이야기를 농밀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그가 실제 환자로 입원한 3개월 동안 만난 개성 강한 환자들과 에피소드를 통해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몸과 마음의 병에서 자신이 회복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1969년 데뷔 이래 『자포자기 천사』와 같은 개그물, 『패러렐 광실』, 『부조리 일기』 등 부조리극 성향의 SF물, 『햇빛』, 『바다에서 온 기계』 등 에로틱한 미소녀물까지 발표하는 장르마다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인기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업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 그는 결국 우울증에 빠져 어느 날 홀연히 실종된다. 긴 노숙 생활 끝에 경찰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돌려보내지지만, 1992년 또다시 가출해 이번에는 거리에서 무작정 배관공 생활을 시작한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만화가로 복귀한 뒤에도 그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가족에게 강제 입원 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우울증과 알코올에 빼앗긴 10년의 세월에서 겨우 빠져나오면서 아즈마 히데오는 말 그대로 몰락의 연속이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로 결심한다. 부조리 개그의 선구자였던 그는 쓰레기를 주워 먹고 자살 미수만 수십 번이었던 경험을 철저하게 객관화한 자기 캐릭터의 자학과 자조로 재현, 역설적으로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사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낸 아즈마 히데오의 용기와 노력에 보답하듯 『실종일기』는 2005년 일본의 주요 만화상(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대상, 일본 만화가 협회상 대상,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 세이운상 논픽션 부문)을 모두 휩쓸며 그를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우울증과 재활 준비 기간을 그린 『울적 히데오 일기』, 『어슬렁 어슬렁 히데오 그림 일기』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알코올 의존증 치료 기간을 만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착수, 8년 만에 『알코올 병동』을 세상에 내놓는다.
“1998년 12월 26일, 나는 아내와 자식에게 끌려 A 병원 정신과 B 병동(별명 알코올 중독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두 번의 실종 이후 술로 마음의 구멍을 채웠던 아즈마 히데오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다 결국 알코올 병동에 강제 입원 당하는 처지가 된다. 전작에서 “그건 또 다음에 이야기하죠.”라는 결말과 함께 미완으로 끝났던 이 내용은, 『알코올 병동』에서 비로소 시작과 끝을 가진 완결된 이야기가 되었다. 그는 알코올 병동에서 보낸 이 3개월 동안의 체험을 주인공인 자신에서 다양한 환자가 살아가는 알코올 병동 전체로 무대를 넓혀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의존증의 실제 치료 과정을 따라 『알코올 병동』의 구성은 이탈 증상과 신체적 문제를 다스리는 ‘1기’, 금주 프로그램을 따르며 본격적 치료에 들어가는 ‘2기’, 사회 복귀를 위해 외출, 외박 훈련을 시작하는 ‘3기’로 이루어져 있다. 병동에서 아즈마는 전작에서도 등장했던 ‘여왕’ 미키모토, ‘미니라’ 스즈키, ‘사기꾼’ 아사노 같은 의존증 환자부터 병동의 의사와 간호사, 금주 모임인 AA(Alcoholics Anonymous, 무명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단주회 멤버까지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진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벼랑 위로 차를 몰고, 비닐봉지에 토해낸 술을 다시 마시고, 온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환각을 말하는 그들의 체험담은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막장으로 유명했던 전작 못지않은 페이소스와 유머로 날것 그대로의 인간과 인생을 말하고 있다.
『알코올 병동』에는 단조롭고 비참해 보이는 병동의 인생에서 개그 만화가의 냉정한 관찰력으로 찾아낸 유머와 웃음 외에도 또 다른 미덕이 있다. 그것은 이 이야기가 알코올 병동 사람들의 군중극이면서 동시에 의존증 환자의 생생한 투병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온다. 먹는 약에서부터 프로그램까지 철저하게 기록된 치료 과정, 병동 안에서 직접 겪은 몸과 마음의 변화, 들어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알코올 병동의 하루 일과까지 꼼꼼하게 재구성된 알코올 병동의 하루는 성인 남성의 70퍼센트가 음주하며 200만 명 이상이 알코올 중독이지만 치료받는 환자는 7만 8천여 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더욱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전작에서 “가능한 한 리얼리즘을 배제하고 그리려고 한다.”라며 실종의 이유를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던 그는 이번에는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의존증의 원인을 직시하고 병을 이겨 내려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로 얻게 된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병. 책 첫 페이지에서 직접 선언한 대로 ‘회복할 수는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한’ 이 불치병과 싸우면서 그가 찾아낸, 술을 대신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최근까지 신작을 출간하며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는 그의 작품 활동과 긴 세월 꾸준히 빚어 세상에 내보낸 이 만화책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일본에서 시리즈 누계 10만 부를 돌파한 기록과 많은 수상 이력이 말하듯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대작인 『알코올 병동』. 긴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아즈마의 이 마지막 ‘일기’에서 독자는 슬픔과 웃음이 함께하는 진짜 사람 이야기를 접하고, 몰락의 끝에 가서야 그가 겨우 찾아낸, 수많은 유혹에 밀려 우리가 외면해 왔던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 『알코올 병동』의 숨겨진 요소 1: 본문 마지막에 실린, 『먼 곳으로 가고파』를 쓴 SF만화가 도리 미키와 아즈마 히데오의 대담. 『알코올 병동』을 완성하기까지의 뒷이야기와 작가의 감회를 들을 수 있다.
★★ 『알코올 병동』의 숨겨진 요소 2: 표지 안쪽에 인쇄된 셀프 케어 자가 평가표.
입원 전후 일어난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 기록하는 체크리스트로, 아즈마 히데오가 실제로 작성한 내용이다.
이 바닥에 내려오는 격언. “한번 마시겠다고 마음을 먹은 알코올 중독자는 몇 명이 있어도 말릴 수가 없다.”
-135쪽
알코올 의존증 환자 가족은 술을 마실 때의 난동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 병원에서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69쪽
어차피 의심받을 거면 마셔 버리자!
-303쪽
설령 지도가 있다 해도 난 목적지에는 도착할 수 없어….
-3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