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상공 35,000미터에서 펼쳐지는 창문닦이 소년의 성장기
원제 土星マンション
글 이와오카 히사에 | 그림 이와오카 히사에 | 옮김 송치민
출판사: 세미콜론
발행일: 2015년 4월 15일
ISBN: 978-89-8371-723-8
패키지: 반양장 · 신국 변형판 145x210 · 192쪽
가격: 9,000원
상공 35,000미터에서 펼쳐지는 창문닦이 소년의 성장기
지구 전체가 환경 보호 구역으로 설정되어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된 시대.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35,000미터 상공에 토성의 고리처럼 떠 있는 구조물이다. 상, 중, 하 세 개로 나누어진 구조물의 내부는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거주민의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햇빛을 받기 힘든 하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허름한 동네이고, 상층은 풍요로운 부촌의 분위기를 풍긴다. 하층에서 중학교를 갓 졸업한 주인공 미쓰는 구조물 외벽의 창을 닦다 어느 날 실종된 아버지를 이어 우주 창문닦이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실종에 대한 의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속에서도 미쓰는 창문 닦이의 의미를 생각하며 꾸준히 일을 계속한다. 과거 아버지, 이제는 자신과 일을 함께하는 직장 동료와 청소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미쓰는 아버지의 기억과 만나고, 이는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한 뼘씩 성장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토성 맨션』은 사랑스러운 그림체와 따뜻한 감성으로 국내에도 다수의 팬이 있는 이와오카 히사에가 2006년에서 2011년까지 일본의 만화 잡지 월간 《IKKI》에 연재한, 그녀 최초의 SF 장편 작품이다. 세미콜론은 4권이 출간되고 3년간 소식이 없어 많은 이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토성 맨션』 시리즈의 완결을 2015년 4월 세 권의 동시 출간으로 완료하였다.
따뜻한 감성의 새로운 서민 일상 SF
우주는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강력한 경이감의 공간으로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주가 더는 상상 속의 공간만이 아니게 된 시대를 다루는 SF 만화는 이제 어떤 모습을 해야 할까? 경이감과 상상의 산물들을 전시하기에 바쁘던 SF도 장르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분화되고, 혹은 다른 장르와 결합하며 새로운 분위기의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제 우주 정거장(ISS)에서 화성 식민 계획까지 우주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요즘, 『토성 맨션』은 우주가 배경인 일군의 SF 만화 속에서 뚜렷이 자신의 색깔을 뽐내는 작품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설정, 첨단 과학 기술, 거대한 우주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들…. 보통 SF 하면 떠오르는 이런 요소를 『토성 맨션』은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토성 맨션』은 전 인류가 거주할 정도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설명하거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려는 인간의 분투를 그리는 대신, 구조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과 그들이 품고 있는 작은 꿈에 집중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마치 SF라는 장르의 외피를 쓴 서민들의 일상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SF적인 느낌이 철저하게 배제되었기 때문에 구조물 외벽의 창을 닦는 장면이나 ’연료 전지로 만든 물’ 같은 말이 아니라면 과연 이 만화가 미래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다. 기계도 로봇도 없는 작품 속 풍경은 현재 우리의 일상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토성 맨션』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가장 강력한 판타지, 즉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상상과 가장 낮은 곳의 현실을 만나게 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주 공간으로 진출한다 해도 결국 인간의 삶은 그다지 화려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이 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놓쳐 왔던 매일의 소중함이
세계를 구할 희망이 된다.
우주와 창문닦이라는 새로운 공간, 삶, 사람들 속에서 이어지는 미쓰의 잔잔한 일상과 성장담을 주로 다뤘던 지난 이야기에 이어, 『토성 맨션』 5~7권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교차하는 꿈 속에서 미쓰가 지구 재건의 희망을 이뤄내는 모습을 그린다.
자연의 회복 정도를 직접 알아보고 장차 지구에 돌아갈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강하기(아폴로 계획에서 지구로 돌아오는 사령선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를 제작하려는 한 과학자의 순수한 꿈에, 이를 링 시스템의 계급 체제를 부수는 계기로 삼으려는 불순한 동기가 끼어든다. 때맞춰 시스템에 잠재된 불평등을 한순간에 드러나게 한 화재 사건이 일어나면서, 토성 맨션 주민들은 언제 혁명과 봉기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처지에 놓인다. 이때 미쓰는 자신이 지구 강하 계획을 성공시켜, 자신의 미래에 불안해하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 되려는 꿈을 품는다. 그와 동료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일상을 이어 나갈 친구가 있다는 강한 믿음이다.
홀로 강하기에 탑승해 35,000미터 아래로 낙하를 시도하는 미쓰는 과연 지구의 땅을 밟은 첫 번째 하층 주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슬픔과 웃음을 버무리며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을 성장시키는 이와오카 히사에의 놀라운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는 『토성 맨션』의 결말은 ‘태양계를 감동으로 물들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 준 한국 독자에게 선보이는 『토성 맨션』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린 지구 35,000미터 상공에서 사람들이 일구어낸 따뜻한 감동을 만나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