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바닥에서 재기한 만화가의 자전적 개그 만화1989년 11월, 나는 모 출판사가 의뢰한 원고를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1992년 4월, 모처럼 복귀했는데 또다시 원고를 펑크 내고 달아나고 말았다. 머리에서 뭔가가 솟아났기 때문이었다.그리고 1998년 봄, 나는 자는 시간 이외엔 늘 술을 마시는 완전한 연속음주 상태에 빠졌다. 1969년 데뷔하여 SF, 개그, 에로틱한 미소녀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발표해 각 장르 마니아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는 어느 날 모든 스케줄을 내팽개치고 사라진다. 그리고 약 10여 년이 지나, 자살 기도, 반복된 가출과 복귀, 노숙, 노동자 생활, 알코올 중독 치료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체험 일지가 공개된다. 괴로워하기에는 너무 웃긴, 『실종 일기』라는 개그 만화로.오랜 슬럼프에 허우적거렸던 아즈마 히데오는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사적일 이 작품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2005년 출간된 후 『실종 일기』는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대상, 일본만화가협회상 대상,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 등 주요 상을 휩쓸며 만화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서평▶ 실화라는 것의 효과가 굉장하기도 하고 만화로서 완성도도 높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걸작! – 도리 미키 (만화가, 『먼 곳으로 가고파』)▶ 너무 재미있어서 울 틈도 떨릴 틈도 없다. ‘4등신 인물로 그려진 현대의 신약성서’라고 하면 어떨까? 수난의 연옥이라 할 만한 작품 전반을 강렬한 생명력이 장악하고 있다. – 기쿠치 나루요시 (뮤지션)노숙 생활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까지, 돌연 실종된 만화가의 인생 막장 체험 일지두 번의 가출 그리고 알코올 중독 치료기를 담은 『실종 일기』는 크게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밤을 걷다’에서는 처음 가출해 노숙자로 살았던 경험을 그린다. 아즈마 히데오는 우울증 끝에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고, 야산으로 들어가 노숙 생활을 시작한다. 주운 천으로 대충 텐트를 치고, 쓰레기를 뒤져 먹는 비참한 생활이 몸에 딱 맞다 싶게 적응될 때쯤, 경찰서에 잡혀가 집으로 복귀한다. 2부 ‘거리를 걷다’는 다시 가출해 노숙을 하다가 가스 배관공으로 일하게 된 시절의 에피소드들이다. 책상 앞에서 창작 활동을 하던 만화가가 몸을 주로 쓰는 기능직을 수행하면서 생기는 사건들, 노동자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 등을 보여준다. 그러다 더 이상 일 하기 힘든 상황이 되자 집으로 들어가 다시 만화가 생활을 하다가, 점점 술에 기대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고, 이 내용은 3부 ‘알코올 중독 병동’으로 연결된다. 3부의 이야기는 알코올 중독 병동에 장기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생활. 알코올, 약물 중독 환자들의 천태만상과 치료를 위한 노력이 펼쳐진다. 그리고 부록으로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개의 인터뷰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하나는 권말 부록으로, 『먼 곳으로 가고파』의 만화가인 도리 미키와 작가의 대담이고, 다른 하나는 표지 안쪽에 숨어 있는 ‘시크릿 보너스 인터뷰’다. 만화 이상으로 아즈마 히데오의 남다른 정신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 지난 얘기니 웃을 수 있는 적나라한 실화!『실종 일기』는 우울과 의욕 상실로 인해 상상조차 힘든 삶의 밑바닥으로 스스로 떨어진 사람의 이야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담담하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자신을 철저히 객관화한 상태가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이 유머는 쓰레기를 뒤져 먹고, 담배꽁초를 찾아 길을 헤매고, 술로 환각을 보는 비참한 상황과 극명한 아이러니를 이룬다. 특히 자세히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에피소드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마치 자신을 낄낄대고 비웃으면서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은 『실종 일기』를 어떤 체험 수기와도 다른 독특한 영역으로 가져다 놓았다. 이 만화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작가에게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 걸작이 된 것은 단지 자기 극복의 감동 때문만이 아니라 웃음과 우울, 괴로움과 유쾌함, 자학과 개그가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하는 이 특이한 정서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