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를 웃기고 울린 기적의 만화
백수 날건달로 살면서 마작과 경마에만 열심이고 가끔 술에 취해 쓰레기통에서 자고 들어오는 이사오. 뭔가 맘에 들지 않을 땐 밥상을 뒤집고 본다. 그런 이사오를 먹여 살리고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살아가는 유키에. 그런데도 이사오와 함께라면 늘 행복한 건 왜?‘난폭한 백수건달과 함께 살지만 끊임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여자’라는, 어찌 보면 논쟁적으로 느껴질 『자학의 시』는 한 만화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인 「BS 만화야화」(NHK)에서 소개되어 전 일본에 열풍을 몰고 온 작품이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잡지 《주간 보석》에 연재한 에피소드 중 유키에와 이사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펴낸 『자학의 시』는 꾸준히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는 있었지만, 2004년 이 프로그램 방송 후 더욱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프로그램에서 패널 전원이 감탄하며 ‘일본에서 가장 눈물 나는 4컷 만화’로 극찬했기 때문이다.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무척 일상적이고 사소하다. 그러나 그 사소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무능하고 철없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결국 거리의 여자로 전락했던 유키에, 야쿠자 조직원이었다가 한 여자를 위해 인생을 바꾸는 이사오의 절절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유키에를 짝사랑하는 식당 사장, 옆집 아줌마와 아줌마가 좋아하는 마을회장님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더해지면서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제 상관없다. 인생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으니까
삶의 긴 여정을 거쳐 드디어 유키에는 아이를 가진다. 그리고 아이를 가진 후에야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 유키에는 인생과 사랑에 대해 한층 더 성숙해진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변해가는 이사오의 모습에서 두 사람의 미래가 점점 나아질 거라는 낙관도 생기게 된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신이 이제 어머니가 될 차례가 오자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묻는 대신, 인생의 의미를 확신하는 유키에의 모습은 힘들긴 하지만 삶이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 준다.그리고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해 왕따를 당하면서 도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던 구마모토가 도쿄로 떠나는 유키에에게 전별금을 쥐어줬던 이야기가 드러나고, 20년 만에 다시 만나 두 손을 꽉 잡는 대단원에 도달하면 눈물을 참기 힘들다. “마지막까지 다 읽지 않으면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독자들의 공통된 서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 책은 불행했던 삶에서 의미를 건져낸 유키에의 인생 찬가다.
4컷 만화의 상식을 깬다!
단 네 컷의 그림 안에서 보여주는 전개로 촌철살인을 보여주는 4컷 만화는 언제나 사랑 받아온 장르다. <짱구는 못말려>에서 <보노보노>, <아즈망가 대왕>에 이르기까지 4컷 만화의 화제작들이 이어졌는데, 이제 그 바톤을 <자학의 시>가 넘겨받을 차례다.1권은 이사오와 유키에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간단한 에피소드들로 시작해, 점점 두 사람의 과거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2권에서는 주로 유키에의 어린 시절 등 과거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 페이지에 두 편의 4컷 만화가 배치된, 단순하고 평범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이 4컷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일반적인 스토리 만화처럼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4컷 개그 만화라는 형식에 대해 흔히 가질 법한 선입견을 뛰어 넘어 어떤 역동적인 연출의 극화로도 이끌어내기 힘든 감동을 빚어낸다. 《아사히신문》에서 4컷 만화들을 소개하면서 “정신없는 4컷 개그가 아름답고도 슬픈 삶의 진리를 찾는 드라마로 변모하는 기적 같은 만화”로 언급할 만큼 마법 같은 전개를 보여주는 만화다.
아베 히로시, 나카타니 미키 주연으로 영화화!
『자학의 시』는 2007년 아베 히로시와 나카타니 미키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아베 히로시는 1985년 모델로 데뷔 후 최근작 「결혼 못하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국민 배우이고 나카타니 미키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 역으로 국내외 각종 상을 수상한 배우다. 두 사람의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했는데, 특히 이 영화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겹쳐 보이는 것때문에 나카타니 미키는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학의 시」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이어 2년 연속 일본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자학의 시」는 원작을 대부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지만 이사오와 유키에가 바닷가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추가함으로써 두 사람의 더 밝은 미래를 짐작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