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후 미술의 역사를 단 한 권으로 응축한 기념비적 저술

1900년 이후의 미술사 3판

모더니즘 • 반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

원제 art since 1900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알랭 부아, 벤자민 H. D. 부클로, 데이비드 조슬릿 | 옮김 배수희, 신정훈, 오유경, 김홍기, 오윤정, 조현정, 김일기, 유정아

출판사 세미콜론 | 발행일 2016년 8월 31일 | ISBN 978-89-8371-781-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277x216 · 896쪽 | 가격 100,000원

분야 예술

책소개

1900년부터 2015년까지 

884점의 도판과 115년의 역사가 응축된

현대미술사의 결정판

 

140점의 도판과 80쪽의 텍스트가 보강된 3판

 

추천의 말

 

김영나(서울대 교수ㆍ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반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이후의 커다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늘의 미술이 어디에 와 있으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제시하는 책이다. …… 20세기 현대미술의 복잡한 갈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설서이자, 저자 각각의 시각과 견해가 분명히 드러나는 전문적인 미술사 저술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을 통해 미술 작품뿐 아니라 미술 읽기 또한 지난 30년간 미술문화이론의 적용으로 급변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이정(미술평론가)

“동시대미술에 관한 천편일률적 그림 해설서에 만족할 수 없었던 독자에게는 두고두고 참조할 고질의 역사서다.”

 

니콜라스 세로타 경(테이트 갤러리 관장)

“이 책은 명쾌한 답을 주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리처드 마이어(《아트포럼》)

“『1900년 이후의 미술사』는 대학의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현대미술의 결정적인 교과서가 될 것이다. …… 학생들은 이 책에서 비평적 적용에 대한 최고의 모델과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던 유산에 대한 비할 데 없는 설명을 얻을 수 있다.”

편집자 리뷰

20세기 이후 미술의 역사를 단 한 권으로 응축한 기념비적 저술

 

2007년 처음 한국의 독자들에게 현대미술사의 기념비적 저서로 선을 보였던 『1900년 이후의 미술사』가 2012년에 개정증보판을 출간한 후, 그로부터 4년 만에 다시 3판을 출간했다. 첫 한국어판이 출간된 이래로 지금까지 이 책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장 충실한 책으로 평가를 받아 왔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과 양질의 도판 자료, 짜임새 있는 구성은 미술 전공자는 물론이고 미술 애호가와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 교양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함께 미술사 분야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해 왔다.

1판이 출간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세 번째 판을 출간함으로써 이 책은 21세기 현재 진행 중인 미술사의 이슈 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논의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3판에서는 1900년부터 지난해인 2015년까지 115년의 현대미술의 역사를 이 한 권에 응축했으며, 개정증보판에서 140점의 도판과 80쪽의 텍스트를 보강해 무려 884점의 도판과 함께 100여 편 연도별 에세이를 수록했다. 또한 3판을 준비하면서 이 책의 옮긴이들은 기존의 번역을 점검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등 현대미술사의 기념비적 저술이라는 타이틀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1900년부터 2015년까지 미술의 흐름을 연도별로 기술

 

『1900년 이후의 미술사』는 1판 출간 이후 개정증보판에서 변화한 미술계 상황과 관심사에 맞춰 내용을 업데이트했듯이, 이번 3판에서도 최신 미술에 대한 해석을 추가하고 기존의 20세기 미술을 읽는 새로운 접근법을 보충했다. 1900년부터 1년 단위의 연도별 기술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1900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115년간 있었던 미술운동과 주요 미술가, 결정적인 작품, 전시, 선언 등 미술계의 중요한 사건과 쟁점들을 깊이 있게 고찰한다. 이를 통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환점과 약진의 시기는 물론, 그 대안으로 제시된 반모더니즘적 반동의 순간들도 조명하는 등 20세기와 21세기 미술의 큰 흐름과지형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이번 3판에서는 현대미술사의 최근 이슈를 업데이트하는 작업과 더불어 1판과 2판에서 간략하게 다루었던 주제를 보강하거나 새롭게 떠오른 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2판에서 하나의 에세이로 함께 다뤘던 「구타이 미술과 신구체주의」는 개별적인 주제로 분리해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입체주의’의 여러 표현 형식 중에서 전후 모더니즘의 지배적 양식이었던 「종합적 입체주의」도 새롭게 다루고 있다. 또한 「초기 추상 영화」, 「포스트모던 건축」, 「퀴어 미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 등은 미술계의 변화된 관점과 관심사를 반영해 새롭게 추가한 주제들이다.

 

 

현대미술사와 비평의 기본이 되는 방법론과 담론 제시

 

이 책은 다섯 개의 서론을 통해 20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미술의 틀을 마련해 주는 이론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정신분석학, 예술사회사, 형식주의와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그리고 이번 3판에 새롭게 추가된 ‘세계화’가 바로 그것이다. 예술 작품과 주체의 관계에 주목하는 정신분석학적 방법론(할 포스터), 작품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문맥을 중시하는 예술사회학적 방법론(벤자민 H. D. 부클로), 작품의 형성 과정과 의미화 작용처럼 작품의 내재적 구조를 규명하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적 방법론(이브-알랭 부아), 구조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후기구조주의적 방법론(로잘린드 크라우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시장 자유화, 글로벌리즘으로 대두된 세계화라는 방법론(데이비드 조슬릿)은 이 책 전체의 기획을 받치고 있는 이론적 틀이자 접근법으로, 이 책의 에세이 대부분은 이 방법론들이 적용된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자들은 서론을 통해 각 방법론의 역사적·학문적 맥락과 그것이 미술 생산 및 해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피는 동시에, 각 에세이를 통해 이들 방법론이 실제 비평과 분석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본보기를 얻을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다섯 명의 저자와 상호 텍스트성

 

미술 비평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옥토버》의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알랭 부아, 벤자민 H. D. 부클로, 그리고 데이비드 조슬릿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미술사학자들이다. 전체로는 공동저술이지만 각 에세이는 대체로 1인의 저자가 자신의 고유한 관점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이론적 틀로 제시된 다섯 개 방법론들의 관점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며 긴장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각 저자들도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각자의 목소리와 시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점을 미하일 바흐친의 용어를 빌어 ‘대화적’이라고 설명하며 여기에 독자들이 제3의 관점을 더해 논의가 더 발전하고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의 ‘대화적’ 태도는 특히 ‘20세기 중반의 미술’과 ‘오늘의 미술이 처한 곤경’이라는 주제로 열린 두 편의 난상토론을 정리한 라운드테이블에서 잘 드러난다.

 

 

884점의 풍부한 도판과 참고 자료

 

국내에 출간된 현대미술 서적 중 가장 많은 884점의 도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풍부한 양질의 도판만으로도 이 책의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이 책만의 독특한 상호참조 기능을 활용하면 각 표제연도를 넘나들며 관심 있는 주제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따라가거나 서로 비교하는 등 유연한 독서가 가능하다. 또한 해당 에세이와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 저작 등을 다룬 상자글과 각 에세이 말미에 수록된 참고문헌 목록을 통해 독자들은 필요에 따라 각자의 관심사를 확장해 갈 수 있다.

 

 

3판 출간 기념 1900년 이후의 미술사 인포그래픽 포스터 증정 이벤트 진행

 

세미콜론에서는 이번 『1900년 이후의 미술사』 3판 출간을 기념해 1900년 이후 현대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제작해 독자들에게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러시아 절대주의 미술의 거장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인 「여성의 토르소(A Woman’s Torso)」가 함께 담긴 이 인포그래픽 포스터는 세미콜론의 홈페이지에서 전자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고, 각 서점에서 세미콜론 도서를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다. 이벤트의 자세한 내용은 세미콜론 홈페이지(http://www.semicolon.co.kr 또는 semicolon.minumsa.com)와 각 서점 이벤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이 책의 구성

저자 서문

 

서론

1. 모더니즘과 정신분석학

2. 예술사회사의 모델과 개념

3. 형식주의와 구조주의

4. 후기구조주의와 해체

5. 세계화, 네트워크, 그리고 취합이라는 형식

 

1900–1909

1900a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다. 빈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표현적인 미술이 정신분석학과 더불어 등장한다.

1900b 앙리 마티스가 오귀스트 로댕의 파리 작업실을 방문하지만 선배 조각가의 양식을 거부한다.

1903 폴 고갱이 남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에서 사망한다. 고갱 미술에서 보이는 부족미술과 원시주의의 환상들이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초기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상자글 • 이국적인 것과 나이브한 것

1906 폴 세잔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세잔의 죽음과 1년 전 개최된 빈센트 반 고흐와 조르주 쇠라의 회고전을 계기로 후기인상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야수주의가 그 뒤를 잇는다.

상자글 • 로저 프라이와 블룸즈버리 그룹

1907 양식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원시적 충동이 드러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통해 파블로 피카소는 미메시스적 재현에 가장 강력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상자글 • 거트루드 스타인

1908 빌헬름 보링거가 『추상과 감정 이입』에서 추상미술을 세계에서의 후퇴로, 재현미술을 세계로의 개입으로 대조한다. 독일 표현주의와 영국 소용돌이파는 이렇게 상반된 심리 상태를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1909 F. T. 마리네티가 최초의 미래주의 선언을 《르 피가로》 1면에 발표한다. 아방가르드는 처음으로 매체와 결합했으며, 스스로를 역사와 전통에 저항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상자글 •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에티엔–쥘 마레

 

1910–1919

1910 앙리 마티스의 「춤 II」와 「음악」이 파리 살롱 도톤에서 비난받는다. ‘장식’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 이 작품들에서는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 만큼 방대한 색면이 펼쳐진다.

1911 파블로 피카소가 ‘빌렸던’ 이베리아 석조 두상을 원래의 소장 기관인 루브르 박물관에 돌려준다. 원시주의 양식을 변화시킨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분석적 입체주의를 전개한다.

상자글 • 기욤 아폴리네르

1912 상징주의 시, 대중문화의 부흥, 그리고 발칸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의 저항 등, 서로 충돌하는 여러 상황과 사건들이 영감을 주는 가운데 입체주의 콜라주가 창안된다.

1913 로베르 들로네가 베를린에서 ‘창’ 연작을 전시한다. 유럽 전역에서 초기 추상의 패러다임과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1914 블라디미르 타틀린은 입체주의의 변형으로서 구축 작품을 발전시키고 마르셀 뒤샹은 입체주의와의 단절로서 레디메이드를 제안하며, 이를 통해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미술 매체를 비판한다.

상자글 • 곰의 가죽

1915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0.10>전에 절대주의 캔버스를 출품하면서 러시아 미술과 문학의 형식주의 개념들이 한곳에 모인다.

1916a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래주의와 표현주의의 도발에 대한 이중 반작용으로 취리히에서 국제적인 운동 ‘다다’가 시작된다.

상자글 • 다다 저널

1916b 폴 스트랜드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잡지 《카메라 워크》에 참여한다. 사진을 비롯한 기타 예술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미국 아방가르드가 형성된다.

상자글 • 아머리 쇼

1917a 피트 몬드리안이 2년 동안의 집중 연구 끝에 추상을 돌파하고 신조형주의로 나아간다.

1917b 1917년 10월 테오 판 두스뷔르흐가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데 스테일》을 창간한다. 이 저널은 1922년까지는 매달, 그 이후에는 부정기적으로 발행된다. 1932년 마지막 호는 판 두스뷔르흐의 사망 직후 헌정의 의미로 발행된다.

1918 뒤샹이 마지막 회화 작품인 「너는 나를/나에게」를 완성한다. 여기서 뒤샹은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우연의 사용, 레디메이드의 승격, ‘지표’로서의 지위를 갖는 사진 개념 등을 집약한다.

상자글 • 로즈 셀라비

1919 파블로 피카소가 13년 만에 파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의 작업에서 혼성모방이 시작된 시기는 반(反)모더니스트적인 회귀 운동이 널리 퍼져나간 시기와 일치한다.

상자글 •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발레 뤼스

상자글 • 질서로의 복귀

 

1920–1929

1920 베를린에서 다다 페어가 열린다. 아방가르드 문화와 문화적 전통의 양극화로 예술 실천은 정치화되고 포토몽타주가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다.

1921a 「세 악사」를 통해 파블로 피카소는 전후 모더니즘의 지배적 양식인 종합적 입체주의를 전개하면서 니콜라 푸생의 고전주의를 끌어들인다.

1921b 모스크바 미술문화연구소의 회원들이 구축주의를 새로운 공동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적 실천으로 규정한다.

상자글 • 소비에트 기관

1922 한스 프린츠호른이 『정신병자의 조형 표현』을 출판하고 파울 클레와 막스 에른스트는 ‘광인의 미술’을 탐구한다.

1923 20세기 모더니즘 미술과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바우하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첫 공식 전시회를 개최한다.

1924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혁명》의 창간호를 발행하여 초현실주의 미학의 용어들을 정립한다.

상자글 • 초현실주의 저널

1925a 파리에서 열린 아르 데코 전시가 현대적 키치의 탄생을 공식화한 반면, 르 코르뷔지에의 기계 미학은 모더니즘의 악몽이 되고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노동자 클럽은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주창한다.

상자글 • 블랙 데코

1925b 큐레이터 구스타프 F. 하르트라우브가 만하임 미술관에서 최초의 신즉물주의 회화전을 기획한다. 이 새로운 ‘마술적 리얼리즘’은 ‘질서로의 복귀’라는 당시의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독일 표현주의와 다다에 종말을 예고한다.

1925c 오스카 슐레머는 『바우하우스의 무대』를 출간하고 마네킹과 오토마톤을 현대적 연기자의 이상으로 제시한다. 다른 미술가들, 특히 다다에 관여했던 여성 작가들이 인형과 꼭두각시의 알레고리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1925d 5월 3일 아방가르드 영화 공개 상영회 〈절대 영화〉가 베를린에서 열린다. 이 프로그램에는 영화의 방식으로 추상화 기획을 이어 나간 한스 리히터, 비킹 에겔링, 발터 루트만, 페르낭 레제의 실험 작품들이 있다.

1926 엘 리시츠키의 「제품 시연실」과 쿠르트 슈비터스의 「메르츠바우」가 독일 하노버에 설치된다. 이 구축주의자와 다다 미술가는 아카이브로서 미술관 건축을, 멜랑콜리아로서 모더니즘 공간의 알레고리를 변증법적으로 구상한다.

1927a 브뤼셀에서 상업미술가로 활동하던 르네 마그리트가 파리의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광고 기법을 활용한 그의 미술은 언어와 재현의 애매함을 탐색한다.

1927b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스테인리스스틸로 「신생」을 제작한다. 그의 조각 「공간 속의 새」를 둘러싸고 미국에서 벌어진 공판에서 고급예술과 산업 생산 모델 간의 경쟁이 본격화된다.

1927c 찰스 실러가 포드 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새로 신축한 리버 루즈 공장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북미 모더니스트들이 기계시대에 서정적으로 접근하자 조지아 오키프는 이를 자연 세계로 확장한다.

상자글 • 뉴욕현대미술관과 앨프리드 H. 바

1928a 블라디슬라프 스트르제민스키가 『회화의 유니즘』을 발표하자 구축주의의 국제화가 절정에 달한다. 뒤이어 1931년에 블라디슬라프 스트르제민스키와 카타르지나 코브로가 공동 저술한 조각에 관한 책 『공간의 구성』이 출간된다.

1928b 얀 치홀트의 『신타이포그래피』출판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가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의 북디자인과 광고에 미친 영향을 공인하고 국제양식이 출현하는 틀을 마련한다.

1929 독일공작연맹의 주관으로 5월 18일부터 7월 7일까지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최된 <영화와 사진>전이 세계의 다양한 사진 작업과 논의를 보여 준다. 20세기 사진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된 이 전시는 사진 매체에서 새로 등장한 비평 이론과 역사 서술에 주목한다.

 

1930–1939

1930a 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서 등장한 대중 소비자와 패션 잡지가 사진의 제작과 배포에 대한 새로운 구조를 만들면서 여성 사진가들의 등장을 돕는다.

1930b 조르주 바타유가 《도퀴망》에 『원시 미술』에 관한 비평문을 쓴다. 이를 계기로 아방가르드와 원시주의의 관계 내 분열, 그리고 초현실주의 내부에 존재하던 뿌리 깊은 분열의 기미가 표면화된다.

상자글 • 카를 아인슈타인

1931a 알베르토 자코메티,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브르통이 “상징적으로 기능하는 오브제”에 대한 글을 잡지 《혁명을 위한 초현실주의》에 게재한다. 초현실주의가 물신주의와 환상의 미학을 오브제–만들기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1931b 호안 미로는 “회화를 암살한다.”는 자신의 결심을 다시 공언하고 알렉산더 칼더의 섬세한 모빌은 둔중한 스태빌로 대체된다. 더불어 유럽의 회화와 조각은 조르주 바타유의 ‘비정형’ 개념을 반영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낸다.

1933 디에고 리베라가 록펠러 센터 벽화에 그린 레닌 초상화를 둘러싼 스캔들이 불거진다. 멕시코 벽화 운동에 자극을 받아 미국 곳곳에서 정치적인 공공 벽화가 생산되면서 미국의 정치적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례가 마련된다.

1934a 소비에트 작가총동맹 제1차 회의에서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령을 선언한다.

1934b 헨리 무어가 「조각가의 목표」를 통해 구상과 추상, 초현실주의와 구축주의 사이에서 작업하는 영국 직접 조각의 미학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1935 발터 벤야민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의 초안을 마련하고, 앙드레 말로는 ‘벽 없는 미술관’을 구상하며, 마르셀 뒤샹은 「여행용 가방」의 제작에 착수한다. 사진을 통해 예술 영역에서 표면화된 기계 복제의 충격이 미학 이론, 미술사, 작품 제작의 관행에서도 감지된다.

1936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실행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워커 에번스와 도로시어 랭을 비롯한 일군의 사진가들이 대공황에 빠진 미국 농촌을 기록한다.

상자글 • 공공사업진흥국

1937a 유럽 열강이 파리만국박람회의 각 국가관에서 미술・무역・선전 경쟁을 벌이는 한편, 나치는 뮌헨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대대적으로 비난하는 <퇴폐 ‘미술’>전을 개최한다.

1937b 나움 가보, 벤 니콜슨, 레슬리 마틴이 런던에서 『서클』을 출간하며 기하 추상의 제도화를 공고히 한다.

1937c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된다.

 

1940–1944

1942a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파르티잔 리뷰》의 편집자들이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미국 아방가르드의 비정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다.

1942b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수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망명한다. 뉴욕에서 개최된 두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런 망명의 상황을 반영한다.

상자글 • 추방과 망명

상자글 • 페기 구겐하임

1943 할렘 르네상스가 인종적 자각과 그 유산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킬 무렵, 제임스 A. 포터는 미국 흑인미술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현대 니그로 미술』을 뉴욕에서 간행한다.

1944a 피트 몬드리안이 「승리 부기–우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이 작품은 회화에서 파괴라는 관념을 추구했던 몬드리안 고유의 기획을 보여 준다.

1944b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보나르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은 야만성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나치에게 점령된 프랑스에 그대로 머문다. 전쟁 중에 거장들이 발전시킨 양식이 전후에 알려지면서 신세대 예술가들을 자극한다.

라운드테이블-20세기 중반의 미술

 

1945–1949

1945 데이비드 스미스가 「일요일의 기둥」을 제작한다. 구축 조각은 전통적인 미술의 수공예 원리와 현대 제조업의 산업 원리를 동시에 보여 준다.

1946 장 뒤뷔페가 곧 ‘앵포르멜’이라 불리는 전후 프랑스 미술의 새로운 분변적 경향을 보여 주는 ‘오트 파트’를 전시한다.

상자글 • 아르 브뤼

1947a 라슬로 모호이–너지가 시카고에서 사망한 지 1년 후, 요제프 알베르스가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변형’ 회화를 시작한다. 미국에 수입된 바우하우스 모델이 다양한 예술적 명령과 제도적 압력에 의해 변형된다.

1947b 뉴욕에서 창간된 《파서빌러티스》가 추상표현주의가 하나의 운동으로 결성했음을 알린다.

1949a 《라이프》지가 독자들에게 “잭슨 폴록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생존 화가인가?”라고 묻는다. 잭슨 폴록의 작품이 선진 미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1949b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 출신의 젊은 미술가 모임인 코브라가 동명의 잡지를 발간하고 ‘생명의 핵심 근원’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한다. 한편, 영국의 뉴브루탈리스트들이 전후 세계의 내핍한 상황에 적합한 일종의 벌거벗은 미학을 선보인다.

 

1950–1959

1951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동료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버림받은 그는 미니멀리즘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다.

1953 작곡가 존 케이지가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작업 「타이어 자국」에 참여한다. 라우셴버그, 엘스워스 켈리, 사이 톰블리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표의 흔적이 표현적인 자국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발전한다.

1955a 구타이 그룹의 미술가들이 도쿄에서 열린 자신들의 첫 번째 전시에서 제안한 잭슨 폴록의 뿌리기 작품에 대한 새로운 독해는 일본 전통 미학과 닿아 있으며 ‘액션 페인팅’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1955b 파리의 드니즈 르네 갤러리에서 열린 <움직임>전과 함께 키네티시즘이 시작된다.

1956 영국 팝아트의 선구자인 인디펜던트 그룹이 전후 시기의 미술, 과학, 기술, 상품 디자인, 대중문화 간의 관계를 연구한다. 이들의 성과는 런던에서 열린 전시 <이것이 내일이다>에서 절정을 이룬다.

1957a 문자주의 인터내셔널과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라는 소규모의 두 전위 그룹이 통합돼 전후 예술 운동 중 가장 정치 참여적이었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 결성된다.

상자글 • 『스펙터클의 사회』의 두 명제

1957b 애드 라인하르트가 「새로운 아카데미를 위한 열두 개의 규칙」을 쓴다. 유럽에서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던 무렵 미국에서는 라인하르트, 로버트 라이먼, 아그네스 마틴이 모노크롬과 그리드를 탐색한다.

1958 재스퍼 존스의 「네 개의 얼굴이 있는 과녁」이 《아트뉴스》 표지에 실린다. 프랭크 스텔라 같은 미술가들에게 존스는 형상과 배경이 하나의 이미지–사물로 융합된 회화 모델을 제시했으며,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의 기호들과 개념적 모호함을 사용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상자글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959a 루치오 폰타나가 첫 번째 회고전을 가진다. 키치 연상물들을 사용하여 이상적인 모더니즘에 문제를 제기한 그의 비판은 후계자인 피에로 만초니에게로 계승된다.

1959b 샌프란시스코 미술협회에서 브루스 코너가 사형 제도에 반대하기 위해 어린이용 식탁 의자에 절단된 신체가 놓인 「어린이」를 발표한다. 뉴욕과 파리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작업이 있었지만 이들보다 훨씬 과격했던 서부 연안의 브루스 코너, 월리스 버먼, 에드 키엔홀츠 등의 미술가들은 아상블라주와 환경 작업을 발전시킨다.

1959c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인간의 새로운 이미지>전이 열린다. 실존주의 미학이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 뒤뷔페, 프랜시스 베이컨, 윌렘 데쿠닝 등의 작품에 나타난 구상에 관한 냉전의 정치로 확장된다.

상자글 • 미술과 냉전

1959d 리처드 에이브던의 『관찰』과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이 뉴욕사진학파의 변증법적인 두 항을 이룬다.

1959e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신구체주의 선언」이 일간지 《호르날 두 브라질》의 두 페이지에 걸쳐 발표된다. 이로써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기하 추상의 합리주의적 해석이 현상학적 해석으로 대체된다.

 

1960–1969

1960a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파리의 다양한 미술가를 모아 누보레알리슴 그룹을 결성한다. 이 그룹은 콜라주, 레디메이드, 모노크롬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한다.

상자글 • 네오아방가르드

1960b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모더니즘 회화」를 발표한다. 그의 비평이 방향을 바꾸어 60년대 새로운 논쟁들을 만들어 낸다.

상자글 • 레오 스타인버그–평판 화면

1960c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이 회화에 만화와 광고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제임스 로젠퀴스트나 에드 루샤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이렇게 미국의 팝아트가 탄생한다.

1961 12월에 클래스 올덴버그가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 「가게」를 연다. 「가게」는 하나의 ‘환경’으로서 주위에 널린 저렴한 가게들의 진열 방식을 흉내 냈으며, 모든 품목은 판매를 위한 것이었다.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10개의 다양한 ‘해프닝’이 「가게」 부지에 위치한 올덴버그의 레이 건 극장에서 수행된다.

1962a 서독 비스바덴에서 조지 마키우나스가 플럭서스 운동의 형성을 알리는 일련의 국제적 행사중 첫 번째 이벤트를 조직한다.

1962b 빈에서 귄터 브루스, 오토 뮐, 그리고 헤르만 니치 등 일군의 미술가들이 모여 빈 행동주의를 결성한다.

1962c 커밀라 그레이의 『위대한 실험: 러시아 미술 1863~1922』의 출판으로 인해, 블라디미르 타틀린과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구축주의 원리들에 대한 서구의 관심이 되살아난다. 댄 플래빈, 칼 안드레, 솔 르윗 등과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이 원칙들을 다른 방식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낸다.

상자글 • 《아트포럼》

1962d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처음으로 초기 팝아트의 추상적 면모를 인정한다. 이 특징은 이후 팝 주창자들과 그 추종자들의 작품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1963 게오르크 바젤리츠가 화가 오이겐 쇠네베크와 함께 두 개의 선언문을 발표한 후, 베를린에서 「수포로 돌아간 위대한 밤」을 전시한다.

1964a 히틀러에 대항해 일으킨 슈타우펜베르크의 쿠데타가 실패한 지 20년이 되던 7월 20일, 요제프 보이스는 가짜 자서전을 출판하고, 서독 아헨에서 열린 ‘뉴 아트 페스티벌’에서 대중 폭동을 일으킨다.

1964b 앤디 워홀의 「13명의 1급 지명수배자」가 뉴욕세계박람회 미국관 전면에 일시적으로 설치된다.

1965 도널드 저드가 「특수한 사물」을 발표한다. 저드와 로버트 모리스가 미니멀리즘 이론을 정립한다.

상자글 • 모리스 메를로–퐁티

1966a 마르셀 뒤샹이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주어진」 설치를 완성한다. 점점 커져 가던 젊은 미술가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사후에 공개된 이 새로운 작품과 더불어 절정에 이른다.

1966b <기이한 추상>전이 뉴욕에서 열린다. 여기서 루이즈 부르주아, 에바 헤세, 구사마 야요이 등의 작품이 미니멀리즘 조각 언어에 대한 표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1967a 「뉴저지 퍼세이익 기념비로의 여행」을 발표한 로버트 스미슨이 60년대 후반 미술 작업의 개념으로서 ‘엔트로피’를 제시한다.

1967b 이탈리아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가 첫 번째 아르테 포베라 전시를 연다.

1967c 프랑스 BMPT 그룹의 네 명의 미술가는 대중 앞에서 각자가 선택한 단순한 형태를 캔버스마다 정확하게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첫 번째 선언을 한다. 그들의 개념주의 회화 형식은 전후 프랑스의 ‘공식적인’ 추상미술에 가해진 잇따른 비판들 가운데 최후의 것이 된다.

1968a 60년대 유럽과 미국의 선진 미술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던 두 개의 미술관, 아인트호벤의 반 아베 미술관과 묀헨글라드바흐의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에서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 부부의 전시가 열린다. 여기서 그들은 개념주의 미술과 사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다.

1968b 개념미술이 솔 르윗, 댄 그레이엄, 로렌스 와이너에 의해 출판물의 형식으로 등장하고, 세스 시겔롭이 첫 번째 개념미술 전시를 기획한다.

상자글 • 미술 잡지

상자글 • 탈숙련화

1969 베른과 런던에서 열린 <태도가 형식이 될 때>전이 포스트미니멀리즘의 발전 양상을 살펴보는 동안, 뉴욕에서 열린 <반(反)환영: 절차/재료>전은 프로세스 아트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전시들에서 나타난 세 가지 주요 양상이 리처드 세라, 로버트 모리스, 에바 헤세에 의해 정교하게 발전한다.

 

1970–1979

1970 마이클 애셔가 「포모나 대학 프로젝트」를 설치한다. 장소 특정적 작업이 등장하면서 모더니즘 조각과 개념미술이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1971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한스 하케의 전시를 취소하고 제6회 <구겐하임 국제전>에 출품된 다니엘 뷔랭의 작품을 철거한다. 제도 비판 작업이 미니멀리즘 세대의 저항에 부딪힌다.

상자글 • 미셸 푸코

1972a 마르셀 브로타스가 「현대미술관, 독수리 부, 구상 분과」를 서독 뒤셀도르프에 설치한다.

1972b 서독 카셀에서 열린 국제전 도쿠멘타 5를 통해서 유럽이 개념미술을 제도적으로 수용했음을 알린다.

1972c 『라스베이거스로부터 배우기』가 출간된다. 팝아트와 라스베이거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즈 스콧 브라운은 조각적 형태로서의 건물인 ‘오리’ 대신, 팝 상징들이 전면에 등장한 ‘장식된 가건물’을 택함으로써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양식적 용법을 정립한다.

1973 비디오・음악・무용을 위한 ‘키친 센터’가 뉴욕에 독립적인 공간을 연다. 시각예술과 퍼포먼스 아트, 텔레비전과 영화 사이에서 비디오 아트가 제도적인 지위를 주장한다.

1974 크리스 버든이 폭스바겐 비틀에 자신을 못으로 고정시킨 「못 박힌」을 선보이면서 미국의 퍼포먼스 아트가 신체적 현존의 극단에 도달한다. 이후 많은 추종자들은 퍼포먼스 아트 행위를 포기하거나 완화하거나 변형한다.

1975a 영화감독 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서사 영화」를 발표하자, 주디 시카고와 메리 켈리 같은 페미니즘 미술가들이 여성의 재현에 관해 다양한 입장을 전개한다.

상자글 • 이론 저널

1975b 일리야 카바코프가 모스크바 개념주의의 기념비적 작업인 「열 개의 캐릭터」 앨범 연작을 완성한다.

1976 뉴욕에 P.S.1이 설립되고 <투탕카멘의 보물>전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다. 대안공간의 설립과 블록버스터 전시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사건은 미술계의 제도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린다.

1977a <그림들>전이 차용의 전략과 독창성 비판을 통해 미술에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발전시킨 젊은 미술가들을 소개한다.

1977b 하모니 해먼드가 《헤러시스》 창간호에서 페미니즘적 추상을 옹호한다.

 

1980–1989

1980 메트로 픽처스가 뉴욕에 문을 연다. 일군의 새로운 갤러리들이 등장하여 사진 이미지와 그것이 뉴스나 광고, 패션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상자글 • 장 보드리야르

1984a 빅터 버긴이 「현전의 부재: 개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제목의 강연을 한다. 이 강연 내용이 책으로 출간되고, 또 앨런 세큘러와 마사 로슬러의 글이 발표되면서 영미 사진개념주의와 사진사, 사진 이론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이 등장한다.

1984b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를 발표한다. 이로써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은 미술과 건축을 넘어 문화 정치학으로 확장되고, 두 개의 상반되는 입장으로 나뉘게 된다.

상자글 • 문화 연구

1986 <엔드게임: 최근 회화와 조각에 나타나는 지시와 시뮬레이션>전이 보스턴에서 열린다. 몇몇 작가들은 조각이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을 다루는가 하면, 다른 작가들은 디자인과 디스플레이가 부상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1987 액트–업 그룹의 활동이 시작된다. 미술에서 공동 작업을 하는 단체가 등장하고 정치적 개입이 표면화되면서 에이즈 위기에 자극받은 미술의 행동주의가 다시 불붙고 새로운 퀴어 미학이 전개된다.

상자글 • 미국의 미술 전쟁

1988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77년 10월 18일」을 그린다. 독일 미술가들이 역사화의 부활 가능성을 타진한다.

상자글 • 위르겐 하버마스

1989 여러 대륙들의 미술을 한데 모아 놓은 <대지의 마술사들>전이 파리에서 열린다. 후기식민주의 담론과 다문화주의 논쟁이 동시대 미술의 전시뿐만 아니라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자글 • 애보리진 미술

 

1990–1999

1992 프레드 윌슨이 볼티모어에서 「박물관 채굴하기」를 선보인다. 제도 비판은 미술관 너머로 확장되고 다양한 부류의 미술가들이 현지 조사에 근거한 프로젝트 미술이라는 인류학적 모델을 사용한다.

상자글 • 상호학제성

1993a 현대 철학의 시각에 대한 폄하를 다룬 마틴 제이의 연구서 『다운캐스트 아이즈』가 출간된다. 많은 동시대 작가들이 이 시각성에 대한 비판을 탐구한다.

1993b 런던 동부 지역 연립주택을 콘크리트 주물로 뜬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집」이 헐린다. 당시 일군의 혁신적인 여성 미술가들이 영국 미술계 전면에 부상한다.

1993c 미국 흑인 미술가들이 정치화된 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한창 선보이는 가운데 뉴욕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가 정체성을 강조한 작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1994a 중견 작가 마이크 켈리의 전시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퇴행과 애브젝션의 상태에 대한 관심을 집중 조명하고, 로버트 고버와 키키 스미스를 비롯한 미술가들은 조각난 신체 형상들을 이용해 섹슈얼리티와 필멸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1994b 「망명 중인 펠릭스」를 완성한 윌리엄 켄트리지는 레이먼드 페티본 등의 미술가들과 함께 드로잉의 새로운 중요성을 다시 입증한다.

1997 산투 모포켕이 「흑인 사진첩/나를 보시오: 1890~1950」을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에 전시한다.

1998 빌 비올라의 거대한 비디오 프로젝션 전시가 여러 미술관을 순회한다. 영사된 이미지라는 형식이 동시대미술에 널리 퍼지게 된다.

상자글 • 미술의 스펙터클화

상자글 • 맥루언, 키틀러, 뉴미디어

 

2000–2015

2001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중견 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전시가 열린다. 디지털 기법을 이용하곤 하는 회화적 사진이 새로운 패권자로 등장한다.

2003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유토피아 정거장>과 <위기의 지대> 같은 전시를 통해 최근의 미술 작업과 전시 기획에 드러난 비정형적이고 담론적인 성격을 예시한다.

2007a 파리 음악의 전당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미국 미술가 크리스천 마클레이가 파리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프랑스 외무부는 소피 칼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프랑스 대표 작가로 선정함으로써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한편 브루클린 음악학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윌리엄 켄트리지에게 「마술피리」 공연을 위한 무대디자인을 맡긴다.

상자글 • 브라이언 오도허티와 ‘화이트 큐브’

2007b <기념비적이지 않은: 21세기의 오브제>전이 뉴욕 뉴 뮤지엄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젊은 세대 조각가들이 아상블라주와 집적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007c 데미언 허스트가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을 전시한다. 실제 사람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해 1400만 파운드어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이 작품이 5000만 파운드에 팔리면서, 미디어의 주목과 시장의 투자 가치를 노골적으로 내세운 미술이 등장한다.

2009a 타니아 부르게라는 멀티미디어 컨퍼런스 <우리들의 무미건조한 속도>에서 「자본주의 일반」이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 퍼포먼스는 미술 관람자들 간의 공감대를 위반함으로써 역으로 이들 사이에 신뢰와 동질감에 기초한 공감대와 네트워크가 전제돼 있음을 보여 준다.

2009b 뉴욕 리나 스폴링스 갤러리에서 열린 유타 쾨더의 전시 <룩스 인테리어>가 퍼포먼스와 설치를 회화의 핵심 의미로 도입한다. 가장 전통적인 미학적 매체인 회화에까지 미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유럽과 미국 작가들에게 널리 퍼진다.

2009c 하룬 파로키가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과 런던의 레이븐 로우 갤러리에서 전쟁과 시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하여 비디오 게임 같은 뉴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대중적 형식과 현대전 수행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2010a 아이웨이웨이의 대규모 설치 작업 「해바라기 씨」가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에 전시된다. 중국 미술가들은 중국의 풍부한 노동시장을 활용해 그 자체가 사회적 대중 고용 프로젝트가 되는 작업들을 선보임으로써 중국의 빠른 현대화와 경제 성장에 반응한다.

2010b 프랑스 미술가 클레어 퐁텐이 노스마이애미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서 미술의 경제학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두 명의 조수들에 의해 ‘조종’되는데, 이 사실 자체가 분명한 노동 분업이다. 이 전시를 통해 아바타가 새로운 형태의 미술 주체로 떠오른다.

2015 테이트 모던,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확장을 계획하고 휘트니 미술관이 새 건물을 개관하면서, 퍼포먼스와 무용을 포함한 근·현대미술을 위한 전시 공간이 국제적으로 급증하는 시대가 본격화된다.

라운드테이블-오늘의 미술이 처한 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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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할 포스터

프린스턴 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타운센드 마틴 1917’ 교수. 『반미학』, 『실재의 귀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Compulsive Beauty)』, 『재암호화: 미술, 스펙터클, 문화정치학(Recordings: Art, Spectacle, Cultural Politics)』,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등의 저서가 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

컬럼비아 대학교 ‘유니버시티’ 교수. 『현대 조각의 흐름』, 『아방가르드의 독창성과 다른 모더니즘 신화들(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 『총각들(Bachelors)』, 『시각적 무의식(The Optical Unconscious)』 등의 저서가 있다.

이브-알랭 부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역사 스쿨 교수. 저서로 『모델로서의 회화(Painting as Model)』, 『비정형: 사용자 가이드(Formless: A User’s Guide)』(로잘린드 크라우스와 공저), 『마지막 한 판: 최근 회화와 조각에 나타나는 지시와 허상(Endgame: Reference and Simulation in Recent Painting and Sculpture)』, 『마티스와 피카소(Matisse and Picasso)』 등이 있다.

벤자민 H. D. 부클로

하버드 대학교 현대미술과 ‘앤드류 W. 맬런’ 교수. 저서로 『네오아방가르드와 문화 산업(Neo–vantgarde and Culture Industry)』과 『오늘의 독일 미술(German Art Now)』이 있으며 마르셀 브로타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칼 안드레, 댄 그레이엄, 가브리엘 오로스코 등의 미술가에 대한 논문이 다수 있다.

 

데이비드 조슬릿

예일 대학교 미술사학과 ‘카네기’ 교수. 저서로는 『피드백: 민주주의에 반하는 텔레비전(Feedback: Television Against Democracy)』, 『무한 후퇴: 마르셀 뒤샹 1910~1941(Infinite Regress: Marcel Duchamp 1910~1941)』, 『1945년 이후의 미국 미술(American Art Since 1945)』 등이 있다.

신정훈 옮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사 및 석사 졸업 후 빙엄턴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박사후연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오유경 옮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 과정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플라워샵 정글의 플로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예술가 50』(공역), 『글리머 디자인이 반짝하는 순간』(공역)이 있다.

김홍기 옮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파리1대학 조형예술과(미학 전공) 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8대학 철학과(미학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이 있다.

오윤정 옮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조현정 옮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일기 옮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쇼에게 세상을 묻다』(공역), 『공중그네를 탄 중년 남자』, 『라운드테이블: 1989년 이후 동시대 미술현장을 이야기하다』(번역 감수)가 있다.

유정아 옮김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