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살의 쓰키코는 혼자 사는 직장 여성. 외로움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일상을 보내다,
약속 없는 저녁이나 휴일에는 동네 선술집의 바에 앉아 술과 안주를 혼자 즐긴다. 어느 날,
자주 가던 선술집에서 고교 때의 은사 마쓰모코 하루쓰나 선생님과 마주친다.
부인과 사별한 노신사와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독신 여성. 두 사람은 함께하는 시간, 어
색한 대화를 쌓아 가며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듯 감정을 키운다. 삶보다는 죽음에
좀 더 가까울 선생님의 시간,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자평하는 쓰키코의 시간은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어울리며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선생님의 가방』의 소재는 삼십대 중반의 여성과 육십을 넘긴 노년의 연애. 통속적이고 신
파적인 멜로가 될 수 있는 소재를 아주 일상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내공, 별다른 기교
없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로 전개한 솜씨는 독보적이다. 그러나 그저 밋밋하고
심심한 이야기는 아니다. 『선생님의 가방』은 세간의 이목을 받을 만큼 나이 차가 나는 커플
이 부딪히게 되는 지극히 당연한 문제들, 나아가 연애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두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만들어진 이
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의 가방』은 가와카미 히로미가 2001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받은 동
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느린 호흡으로 발전하는 감정을 차
분히 써내려간 원작 소설에 섬세하고 리얼한, 그리고 진중한 표현이 강점인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꼭 맞는 옷과 같다. 이 작품은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직한 목소리로 전한다.
이 만화를 읽는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끊임없이 등장하는 술과 안주다. 이미 『고독한 미
식가』로, 요리 만화로도 큰 인기를 모았던 다니구치 지로가 또 한 번 이 방면의 실력을 발휘
했다. 담당자가 요리 만화적인 요소를 넣어달라고 강하게 요청하기도 했다지만, 풍미와 향
기를 간직한 술과 음식은 일상적이면서도 풍요로운 감정, 타인과의 만남이 주는 치유의 느
낌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포인트였을 듯하다. 이 만화를 덮고 나면 아마도 따뜻한 청주 한 잔
과 심심하게 끓인 탕두부를 먹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제1회 | 달과 건전지
제2회 | 장날
제3회 | 스물두 개의 별
제4회 | 버섯 따기 1
제5회 | 버섯 따기 2
제6회 | 설날
제7회 | 전생
제8회 | 꽃놀이 1
제9회 | 꽃놀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