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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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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부제: 명화 속 눈먼 욕망과 연애 유희

최정은

출판사: 세미콜론

발행일: 2013년 8월 30일

ISBN: 978-89-837-1624-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8x225 · 264쪽

가격: 16,000원

분야 예술, 예술일반


책소개

명화 속 남녀상열지사를 엿보다

그림이 들려주는 사랑의 내밀한 속성과 연애 풍속

눈가리개를 한 소녀의 발걸음이 위태롭다. 봉긋 솟은 치맛자락만큼이나 기대에 부풀어 그녀는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를 잡을지, 누구의 품에 안길지, 혹은 장애물에 발이 걸려 고꾸라질지 그녀는 알 수 없다. 화가는 눈이 먼 듯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사랑의 속성을 ‘까막잡기’라는 놀이로 표현했다.(표지 그림)

서양 미술사에서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베르메르의 안온한 실내 장면에 드리운 일상의 애욕, 로코코 시대의 달콤한 연애와 놀이 그림들, 정략결혼의 한계를 넘나든 역사 속 여인들의 이야기와 신화 속 비극적 연애담까지 명화 속 갖가지 사랑의 모습과 매혹의 순간들을 살펴본다. 사랑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욕망에 바보가 되고 속수무책이 되는 ‘눈먼’ 것이며, 그렇기에 유혹의 기술만큼 거리두기 또한 필요한 오묘하고 에로틱한 게임이기도 하다.

포도주 한 모금의 유혹 앞에 망설이는 아가씨, 풍광 좋은 곳에서 서로를 희롱하는 남녀,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된 님프 등, 그림 속 인물들의 사랑은 우리 시대의 사랑과 다르지 않으며 사랑과 연애가 인류의 변치 않는 화두임을 일깨워 준다.


목차

머리말

 

마음속의 폭풍우, 베르메르 시대의 사랑

러브레터, 마음속의 폭풍우 – 네덜란드 편지 주제 장르화

거울에 비친 속마음 – 베르메르의 「음악 수업」

아찔한 유혹의 한 모금 – ‘포도주 마시는 여인’ 장르화

돌아봐 주오, 사랑하는 이여 –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연애와 유희, 로코코 시대의 사랑 

욕망의 심리적 움직임 – 프라고나르의 「그네」

에로틱한 사랑의 게임 –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

춤과 사랑의 대화 – 와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목가적 이상향 속의 연애 유희 – 부셰의 파스토랄 회화

 

정략결혼과 로코코의 장미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최고의 여성 – 마담 드 퐁파두르의 ‘벨 사방트’ 초상화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 – 마담 드 퐁파두르의 삶과 사랑

왕비의 조건 – 비제 르브룅의 「슈미즈 차림의 마리 앙투아네트」

여성 화가로 산다는 것 – 비제 르브룅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신화 속 사랑의 원형들

사랑의 천형, 질투와 의심 –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그림들

무모한 사랑의 말로 – ‘갈라테아’ 그림과 눈먼 큐피드

동성애와 브로맨스 – ‘히아킨토스’와 ‘가니메데’ 그림들

두 가지 사랑의 승리 – 부샤르동의 ‘큐피드’와 르무안의 ‘헤라클레스’

 

일상 예찬, 네덜란드 황금시대 장르화

로코코의 살롱 문화와 패션화

 

참고 문헌

도판 목록


편집자 리뷰

1 걸작으로 보는 인류의 영원한 화두 ‘사랑’

『사랑의 그림』은 제목 그대로 인류의 영원한 화두 ‘사랑’을 테마로 서양 미술의 걸작들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짝을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고 거의 모든 TV 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사랑을 부르짖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은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사사롭고 세속적인 욕망이기에 복잡 미묘한 인간의 속내가 표출되기 마련이고 거기에서 외면할 수 없는 공감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서양미술의 걸작’에 실린 연재물 중 사랑이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글과 그림을 선별해 다듬고 보완하여 탄생했다. 베르메르 등이 활약한 17세기 황금시기의 네덜란드 장르화들과, 부셰와 프라고나르 등이 대표하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당대의 연애 풍속과 사랑의 내밀한 속성을 살펴본다.

저자는 도상해석학 등의 미술사적 해석은 물론, 시를 비롯한 당시 문학 작품과 연극, 시대상과 대중 풍속을 다각도로 끌어들여 미술사에 문외한인 독자와 관람자들도 즐겨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무엇보다 사랑의 감미로움과 절박함, 욕망의 심리적 움직임과 엇박자, 사랑의 맹목성과 연애의 기교 등을 섬세하게 포착해 독자와 교감의 진폭을 넓혔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걸작이나 명화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의 가치가 화려한 회화적 테크닉이나 물질적 값어치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울림과 공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2 달콤한 매혹과 사랑의 순간들 – 네덜란드 장르화와 로코코의 연애와 놀이 그림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와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는 유럽 서구에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서양 미술의 주요 주제였던 역사나 종교 같은 거대 서사에서 벗어나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이 그림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무역 발달과 신교의 영향으로 다른 유럽보다 일찍 시민문화가 꽃피었고 일상생활을 다룬 ‘장르화’가 유행했다. 베르메르를 중심으로 메추, 테르보르흐 등의 작품을 살펴보는 1장의 키워드는 네덜란드 장르화의 독특한 형식인 ‘그림 속 그림’이다. 벽에 걸린 풍경화 등의 그림, 지도, 거울이나 창에 비친 상, 때로는 빈 벽이나 허공, 창과 문을 통해 보이는 외부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그림 속 그림’은 매우 시적이고 미묘한 방식으로 그림의 주 장면에 대해 보조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속내를 비추는 ‘그림 속 그림’을 “화면 속에 다른 차원이 틈입할 여지를 주는 ‘구멍 뚫린’ 그림”으로 설명한다. 창가 모퉁이에 한두 명의 인물을 배치한 실내 장면들은 언뜻 온화하고 고요해 보이지만 ‘그림 속 그림’을 통해 그림에는 폭풍처럼 격렬한 감정의 동요, 유혹의 위태로움과 욕망의 긴장감 등이 부여된다. ‘그림 속 그림’의 의미는 엠블렘 같은 문헌 자료나 도상 해석, 서구의 문학 전통, 시대 풍속 등을 근거로 파악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해석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음악에 비유되는 은근하고 미묘한 교감, 알 듯 말 듯한 모호함은 네덜란드 장르화의 매력이자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예쁨, 우아함, 조화로움을 표방한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는 계몽주의와 함께 개인의식이 싹트고 자유연애 사상이 유행하면서 사랑과 연애, 연회 같은 주제들이 미술사 전면에 부상한 시기였다. 야외에서 남녀가 어울려 유희하는 ‘페트 갈랑트’ 회화나 부셰의 ‘파스토랄’ 회화는 인물들의 세련된 복장에서 보듯 상류사회의 사교적 삶을 반영하지만 자연과의 화합, 소박하고 평등한 이상적 삶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부셰의 애제자이며 가장 로코코적인 화가로 꼽히는 프라고나르는 「그네」를 비롯해 경쾌하고 감각적인 쾌락과 환희, 한순간 압도되는 매혹의 순간 등을 포착한 놀이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기에는 뜻하지 않게 빠져드는 사랑의 우연성(또는 세상살이의 우연성)을 놀이의 규칙을 통해 통제하고 훈련해 보려는 당시 세계관이 담겨 있다. 또한 연애와 사랑이 유혹과 거리두기를 전략적으로 구사해야 하는 사회적 게임임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사랑에 대한 그림은 여성에 관한 담화이기도 하다. 근심 어린 얼굴로 편지를 읽는 네덜란드의 주부, 포도주 한 모금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아가씨, 두 남자의 사랑의 받는 님프, 질투에 사로잡혀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아내 등 여러 여성이 등장하지만 저자는 역사 속에 실재했던 여인들에게 각별히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녀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 구속, 특히 사랑이 아니라 조건에 좌우되던 정략결혼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녀들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유를 꿈꾸었고 그것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실현했다. 왕의 정부였으나 침실의 파트너로 남지 않고 실질적인 비이자 조력자로서 로코코 시대 패션과 예술을 선도한 마담 드 퐁파두르, 이와 대조적으로 왕비라는 지위에 갇혀 타국 땅에서 숨 막히는 결혼생활을 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 변변치 못한 남편과의 결혼으로 눈부신 재능을 썩힐 수도 있었으나 철저한 훈련과 자기 절제로 왕비의 공식 초상화가 자리에까지 오른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이 그러하다. 

한편 화가들은 신화의 한 장면을 택해 파란만장하고 강렬한(때로는 에로틱한) 연애담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 이르는 그림들로 보는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아키스와 갈라테아, 아폴로와 히아킨토스, 헤라클레스 등의 이야기는 운명적 또는 인간적 결함으로 초래된 파국이나 좌절을 통해 비극적 사랑의 원형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극한의 고통 끝에서 얻는 ‘승리’를 경축한다.

 

 

3 ‘시선’을 품은 그림 vs ‘눈먼’ 사랑

최초의 사실적 초상화는 고대 코린토스의 한 소녀가 멀리 떠나는 연인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동굴 벽에 드리운 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린 것에서 창안되었다고 한다. 눈앞에 없는, 또는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대상이나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그림(또는 이미지)은 이와 같이 애초에 ‘사랑’을 품고 있었다. 이미지의 이러한 본성은 베르메르의 대표작이자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까만 배경 속으로 곧 사라져 버릴 듯한 소녀의 이미지에서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갖거나 표상하는 것은 사실은 그 대상의 부재를 그리는 것”이며 “이미지는 언제나 부재의 기억이며 잃고 마는 시선”임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시선’과 ‘바라봄’에 관한 것이며 ‘시선’에 대상을 향한 욕망이 깃들어 있음은 프라고나르 「그네」의 그림이 주문된 배경이나 남과 여의 배치 등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사랑은 역설적으로 ‘눈먼’ 것이기도 하다. ‘사랑에 눈멀다’ 혹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표현이 동서고금을 망라해 통용되듯 사랑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고 바보가 되는 ‘눈멂’은 사랑의 본질적 속성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파가 미친 사람의 뇌파와 비슷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고 한다. 베르텔리의 판화, ‘큐피드의 교육’이라고도 불리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눈먼 큐피드」, 눈을 가리고 상대를 더듬어 찾는 놀이를 그린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는 욕망 앞에 이성과 판단력이 마비되는 ‘눈먼’ 사랑의 속성을 보여 준다.

철학이 과학과 함께 얽혀 발달했던 18세기에는 이러한 ‘눈멂’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루소는 사랑에 눈먼 그 눈이 더 올바르게 본다면서 통제되지 않은 정념과 열정이 주는 쾌락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러나 폴리페모스와 갈라테아 신화에서 보듯 정념적 사랑이 수반하는 공격성은 기술과 훈육을 필요로 한다. 유혹의 기술만큼이나 절제와 거리두기의 기술 또한 중요한 것이다(요즘 표현으로는 ‘밀고 당기기’). 로코코 시대는 물론 우리 시대에도 사랑과 연애가 “사회적 언어적 기교를 필요로 하는” 까다롭고 미묘한 게임에 비유되는 이유이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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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공간》매거진 기자와 《홍익미술》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글을 써 왔다. 저서로 17세기 바로크의 네덜란드 정물화를 다룬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한길사, 2002), 신화, 철학,  서양 중근세의 판화와 상징, 도상해석학을 연결한『영원한 방랑자 트릭스터』(휴머니스트, 2005),『괴물 동물지 엠블럼』(휴머니스트, 2005)이 있다.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서양미술의 걸작’ 칼럼을 연재했다.